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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애들아 힘들면 "힘들어 죽겟다" 말하자

admin | 2012-06-01 | 조회 818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노란 개나리가 동네 어귀마다, 담자락 마다 넘쳐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듯 아직 여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들의 꽃 대궁이 부러지고 있다.

 얘들아 말도 못하게 어렵고 힘들지만 극단적인 선택만은 피하자. 학교 가는 것 힘들고 어려우면 안 다녀도 문제없단다. 그러니 죽음은 생각도 하지 말자. 인생 길게 보면 학교 다니는 것 아무것도 아닌거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야. 세상사 아무리 어려운 일도 다 흘러가게 돼 있어.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 일 인거야. 살아있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니. 저 화사한 진달래의 연분홍 빛을 한 번 보렴, 교정 가득히 퍼져나가는 목련의 은은한 미색을 보려무나. 또 쏟아지는 봄빛 아래 한 번 서 보렴.

 

얘들아 힘들고 어려울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 누구에게든지 ‘나 죽을 만큼 힘들어’ 이런 말을 해보자. 어른들 지금 잔뜩 긴장하고 있거든. 그런 말 한마디에 너희가 갖고 있는 고민은 모두 풀릴 수 있을 거야. ‘죽을 만큼 힘들다’고 얘기하자.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학교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이 암담하다. 학교에 가는 것이 죽을 만큼 힘이 든다면 학교에 가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굳이 죽음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학교라면 그런 학교에는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삶이라는 것은 길지 않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교육에 대해 홈 스쿨링, 대안학교 등 각종 보완 시스템이 잘 마련돼 운영 되고 있다.

 최고의 가치는 살아가는 것이다. 일찍이 사마천은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하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다’고 말했지만 어떤 죽음이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라고 누가 말 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삶은 한 번만 주어지는 최고의 가치다. 연습이 있을 수 없는 실제 상황인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태산보다 무거운 것이 돼야 한다.

 애들이 죽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들로 인해서.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학교, 죽음을 생각하고 결행하게 하는 만드는 학교라면 학교가 과연 존재의 의의가 있는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는 아이들이기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럼 말을 하게 해줘 야지. 학교폭력 예방 대책이 무슨 소용이며, 복수 담임제는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학교 폭력과의 전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조폭과의 전쟁, 조폭들이나 이런 일제 단속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지, 아이들이 그렇게 영악한가? 세상살이에 닳고 닳은 기성세대들이나 납작 엎드려 있다가 흐지부지 해 질 때가 반드시 오니 그때 활동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즉흥적일 수 밖에 없다. 엄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선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토로 할 수 있는 언로를 열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최일선에 닿아 있는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나 교단 현실은 주객이 전도돼 있다. 아이들과 함께 느끼며 호흡하는 시간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업무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고 있다. 이래서는 백약이 무효다. 업무 부담 없이 오직 아이들과 같이 땀 흘리고 아이들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교사에게 시간적 여유를 허해라. 그것만이 학교폭력, 학생 자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교육현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이들이어야 한다. 교사는 직업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책임지는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