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려 한 사람 중 절반은 왜 주변에 알리려 했을까
admin | 2012-03-16 | 조회 957
| ⓒ 시사저널 전영기 | ||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가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인구 10만명당 32.1명꼴로 자살을 택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정불화를 이유로 부모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동반 자살하는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폭력이 이슈가 되면서 청소년 자살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의 권위적인 ‘자살 예방 전문가’인 민성호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2009년 ‘생명사랑위기관리팀’(위기관리팀)을 구성하고, 그해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10개월간에 걸쳐 자살 시도자들의 사례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자살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살 시도자들의 상황을 분석해 자살 원인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민교수의 신념이었다. 민교수와 위기관리팀은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원주기독병원(원주기독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 6백62명에 대한 면담 기록지를 분석했다. 이들 중 사례 관리에 동의한 4백63명에 대해서는 담당 간호사들이 우편, 방문 등의 방법으로 관리를 해왔다. 자살 시도자의 현황 및 정보는 정신과 전문의인 김민혁 조교수가 담당했다. <시사저널>은 민교수팀이 지난 3년 동안 분석한 ‘자살 시도 연구’ 조사 자료 전부를 입수했다.
익숙한 장소를 자살 시도 장소로 택해
민성호 교수팀은 자살 시도자들의 특성, 자살 위험도 및 구조 상황 등을 상세히 분석했다. 자살 시도가 가장 빈번한 시간대는 오후 6시에서 자정 사이로, 32.5%의 사람이 이 시간에 자살을 시도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60.4%로 남성보다 많았다. 40대가 22.8%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30대(19%), 50대(14.8%)가 이었다. 민성호 교수는 “10대 청소년의 경우 자살을 심각하게 시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응급실로 오지 않았을 경우 실제 자살 시도자 수와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 수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학력별로는 고졸 학력을 가진 사람이 34.7%였으며, 중졸 19.6%, 초졸 19.2%, 대졸 이상 12.5% 순이었다.
자살 시도자들이 가장 많이 택한 자살 시도 방법은 ‘음독’이었다. 전체의 80.1%를 차지했다. 자살 시도에 사용되는 약물은 보통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농약이나 수면제, 상비약 등이다. 특히 강원도 원주는 주변에 농지가 많아 서울에 비해 농약의 비중이 높지만, 보통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상비약이나 수면제 등이 많이 사용된다. 경제적 문제로 배우자와 말다툼을 벌인 후 술을 마시고 집에 있던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있다.
자살 시도자들의 87.8%는 익숙한 장소를 자살 시도 장소로 택했다. 생활 반경 내, 예측 가능한 장소에서 자살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역시 가장 많이 택하는 장소는 자신의 집이었다. 신체 장애로 불편을 겪던 한 60대 자살 시도자는 배우자가 집을 비운 사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보통 혼자 사는 경우나, 가족이 집을 비운 저녁 시간대에 자살 시도가 가장 많다는 것이 위기관리팀의 설명이다. 민교수는 “계획된 자살보다는 충동적 자살일 경우 익숙한 장소에서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외딴 장소를 선택한 사람은 6.2%였는데 이런 경우 발견 가능성이 크지 않은 폐건물이나 야산 등을 택했다. 아버지의 산소에서 발견된 자살 시도자도 있었다.
자살 시도자 중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는 경우는 72.3%였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음주가 영향을 미친다고 민교수는 말한다. 실제 자살 시도자의 50.3%는 음주 후 자살을 시도했다. 위기관리팀의 장윤하 간호사는 “통계적으로 한국 사람 20명이 모이면 1명이 자살 생각을 하는데, 술은 그 생각을 자살 시도로 직접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음주가 상황 판단력과 객관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계획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17.4%로 나타났다. 신체적인 지병을 앓던 한 자살 시도자는 자신을 보살펴주지 않는 가족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1년 전부터 농약을 구입해 자살을 계획했다. 가족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유서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자살 시도자 4백71명 중 83.9%가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어려움 알리고자 자살 의도 흘려
특히 주목되는 결과는 ‘자살 시도자가 자살 시도 전후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는가’ 하는 점이다. 자살 시도자의 18%는 간접적으로, 32.6%는 직접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즉, 전체의 50.6%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자살 의도를 주변에 알렸다는 얘기이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는 46.2%였다. 간접적인 형태로는 주변에 ‘그동안 고마웠다’ ‘요새 힘들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살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적으로 ‘나 지금 약을 먹었다’라고 배우자에게 직접 전화한 자살 시도자의 사례도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시기는 ‘자살을 시도한 직후’가 ‘시도하기 전’보다 8 대 2의 비율로 더 많았다.
많은 자살 시도자가 자살 시도 직후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처럼 자살 시도 전후에 도움을 요청하는 자살 시도자의 경우, 정말 목숨을 끊고자 하기보다 주변에 자신의 힘든 상황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크다는 것이 위기관리팀의 설명이다. 반면 죽음을 목적으로 했더라도, 막상 자살 시도 직후 신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에 투신한 한 10대는 친구에게 ‘살려달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살 관련 센터나 응급실에 자살 시도자가 직접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 문제’(29.8%), ‘정신과적 문제’(19.9%)
‘자살을 결심하게 된 동기’에는 역시 가정 문제가 29.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다음은 정신과적 문제로 19.9%였다. 신체적 질병에 대한 비관이나 경제적 문제, 정서적 흥분 등이 각각 10%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동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다고 위기관리팀은 설명한다. 한 남성의 경우 처가 식구들과의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괴로워하다 세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또 다른 여성의 경우 남편의 알코올 중독 문제와 부채 문제를 괴로워하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 가운데 29.2%는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관리팀에 따르면 과거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의 경우 다음에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30% 컸다. 과거 자살 시도 횟수는 1회가 62.7%로 가장 많았고, 2회가 14.5%였다. 4회 이상도 10.9%나 되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한 청소년은 사례 관리를 받는 도중에도 자살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그냥 죽고 싶다’며 네 차례나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두세 차례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온 한 자살 시도자는 간호사에게 다음 자살 계획에 대해 직접 말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자살시도자의 63.8%는 신체적으로 건강했다. 그러나 자살 시도자 중 정신과적 문제가 있거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56.8%나 되었다. 자살 시도자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정신과적 문제는 우울 장애로, 39%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적응 장애로 23.1%였다.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면 쉽게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 위기관리팀의 설명이다. 우울 장애를 앓고 있던 한 여성은 애완견의 사망을 계기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위기관리팀의 신은혜 간호사는 “정신과적 문제를 앓고 있는 경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런 노력이 자살 욕구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정신과적 문제를 치료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